그후 여러날

2009. 5. 30. 00:59daily

월요일은 체력장과 수학여행 준비로 정신이 없었고, 저녁에야 겨우 시청앞에 가서 3시간을 넘게 줄을 서서 대한문 분향소에 헌화를 하고 절을 올렸다. 화-수-목요일은 제주도에 수학여행을 다녀왔다. 금요일 오늘은 1시까지 죽은듯이 자다가 아무도 없는 집에서 혼자 티비를 오후 내내 보면서 울었다 말았다를 반복했다.

수학여행중에 볼것도 없고 재미도 없는데 자꾸 걷기만 한다고 피곤하다고 짜증내던 우리반 아이들과, 그리고 예전 그를 비판하던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묘한 공통점이 있는 것같았다. 정말 좋은 것을 눈 앞에 가져다 줬음에도 그걸 알아볼 눈이 없는 무식하고 눈먼, 그저 불평만 하는 사람들. 사람만이 희망이라는 말이 있지만 가끔은 정말 사람이 희망이라 부를 수 있는 자격이 있을까 싶은 마음도 든다.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조차도 결국 가만히 앉아 키보드만 두들기는 키보드 워리어는 아니었을지. 누가 내 귀에 지껄이는 얘기들이나 티비에서 지껄이는 얘기가 모두 100% 사실이 아니니 필터링하고 의심하고 좀 더 내 생각을 담아서 판단해야 한다는 사실은 알지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용기와 실천에 있어서는 한없이 약한 나니까.

작게는 자신의 하루에, 크게는 자신의 삶 전체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흘러가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것같다. 나뿐 아니라 주위 사람들, 크게는 사회 전체에 어떤 방향성을 부여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을 보통 지도자라 부르겠지. 우리는 그런 의미에서 제대로 된 지도자를 제때에 알아보지 못했고, 결국은 이렇게 잃어버리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 느끼는 이런 허전함이나 공허함, 후회같은 것들이 대다수의 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일거다. 그리고 잊지 말아야겠다는 마음도. 잊지 말아야겠다 다짐했던 지금 이 순간이 부디 오래오래 잊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제주도의 풍경은 참 평화로웠다. 오늘 한줌의 재로 돌아가신 분에게 마음의 평화가 있기를.

2009, 제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