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장 좋아하는것

2009. 3. 25. 00:16daily

2007, 잠실



나란 사람은 "난 이걸 정말 좋아해!"  라는 말을 잘 안하는 수줍은(?) 사람이다. 너무너무 좋아하는 것이라도 걍걍 그럭저럭 적당히 좋아하는 척을 종종 한다. 뭐에 잔뜩 빠져있는걸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건가?

그래도 오늘같은 날에는 이런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얘기한다. 나는 야구를 참 좋아한다고. 국민학교때 아빠를 따라 같이 가서 구경한 도원구장에서의 야구경기에서부터, 늘 날 조마조마하게 만들었던 찬호형님의 메이저리그경기도, 마치 사우나에 들어가있는것같았던 7월 한여름의 잠실야구장에서 봤던 야구경기까지. 지금까지 봤던 모든 경기들을 참 사랑한다. 그리고 최근 2주정도 진행되었던 제 2회 WBC 경기역시 참 기억에 남을만한 좋은 경기였다.

 오늘 결승전을 맞이하여 34교시 수업시간에 아이들과의 야시꾸리한 합의로 수업은 땡땡이치고 야구를 봤다. 인터넷으로 전송되기에 약간의 시차가 있는 영상을 프로젝터로 스크린에 쏘고, 내 노트북에는 mlb.com 의 문자중계가 같이 떠있었다. 11시부터 중계를 보기 시작했고, 점심시간에는 소문이 퍼져서 다른 반 아이들이 다들 몰려와 다같이 관람을 하고 오후에는 옆교실 수업하는 선생님반 아이들도 내 교실에 와서 같이 관람을 했다.

경기는 초반부터 맘편히 볼 수 있는 순간이 하나도 없었다. 두 팀은 서로를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서로의 약점을 죽어라 파고드는 느낌에 공 하나하나를 참 집중하면서 봤다. 나름 20년(?) 정도 야구를 봐왔지만 이렇게 경기 시작부터 끝까지 눈을 부릅뜨고 열심히 집중해서 본 경기는 처음이었던것같다. 경기 결과는 다 알다시피 연장 접전끝에 우리가 준우승을 했다. 경기가 끝나고 나니 마치 내가 4시간짜리 경기를 뛴것처럼 온몸에 힘이 다 빠져서 7교시 수업을 하는데 무척 힘이 들었다.


경기가 끝나고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았다. 우리나라 야구가 참 많은 칭찬을 받은 것은 결국 가장 기본으로 돌아가서 진실된 승부를 했기 때문이 아닐까. 요즘에는 어떤 방법이건 결과가 우선시되고, 또 결과만으로 평가받는데, 쉽게 가지 않고 앞질러 가지 않고 가장 기본적은 것들로 승부를 걸었던 우리나라 야구가 참 보기 좋았다.

아이들과 얘기를 하다보면 가끔 말문이 막힐때가 있다. 노력하면 좋은 결과가 돌아올테니 지금 최선을 다하자고 얘기를 해도 사실 현실은 노력보다는 요행이나 요령이 더 잘 먹히곤 하니까. 그래도 언젠가는 그 노력이 빛을 발한다고 얘기를 해도 사실 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이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건 그냥 이상일 뿐이라고. 그런데 우리나라 야구는 그 이상을 현실로 이뤄준것같아서 참 좋다. 가장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여 결국 이뤄내는 것.

무덤덤하게 "에이 아쉽게 졌네" 라고 말하려다 이번에는 왠지 좀 더 끄적거려 보고 싶었다. 아름답고 행복했던 2회 WBC 이야기. 다음 이야기는 4월의 봄이 오면 우리나라 야구장 의자위에서 캔맥주를 마시며 시작되겠지. 기다려라 내가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