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3-고3 : adut

2004. 5. 31. 00:47good

발음으로 읽으면 아듀~ 라고 읽을수 있는
네개의 단어에서 앞글자만 따온 저 합성어
중 3때 친구들끼리 만든 침목모임의 이름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얼토당토안케 괜히 부반장한다고 손들어서 부반장하고
3학년때는 반 애들중에 예전에 반장, 부반장해본 사람이 나밖에 없어서 어이없게 반장이 되어버렸고
그해의 여름쯤.. 전교 학생회에 소속되어 있는 학생회장, 부학생회장, 각반의 반장, 부반장은 간부수련회를 갔다

중학교는 남녀공학이었고, 처음 말을 트는 친구들이 많아서 처음엔 꽤나 서먹서먹했지만
각각 조를 나누고, 같이 이런저런 극기훈련이다 뭐다 해서 받으면서 자연스레 친해졌고
2박3일의 일정중에 마지막날 밤에는 3학년 애들끼리(2,3학년이 같이 갔다)
구석진 곳에 모여앉아 어디선가 공수해온 맥주한캔씩을 마셨던 기억이 난다
(혹은 음료수였을지도 모르겠다...ㅋㅋ)

그러다 몇몇 아이들이 친해졌고 그중 몇명이 주축을 이루어서 침목모임(?)을 결성하자고 했다
간부수련회에서 친해진 사람들이었으므로 전교학생회장, 부회장, 각반의 반장등이 멤버였다
음..뭐 그렇게 모이려고 한건 아니었고, 잘은 모르겠지만 다들 서로 맘에 들었었나보다...

중3 가을쯤이었나 다같이 모여서 회칙도 정하고 정기회비도 정하고 주소록도 만들었다
당시 유일하게 워드프로그램을 사용할 줄 알았던 내가 서기가 되어서 주소록을 정리하고
회칙을 정리하고 프린트해서 아이들에게 나눠줬던 기억이 난다.

대충 이런 내용들이 우리 사이에 정해졌다

팀 이름 : A.DU.T
- 불어의 아듀~ 라는 작별인사 ->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헤어짐의 인사겸 새로운 만남이라는 뜻
- Always Duckiest Team : ducky 라는 사전을 뒤져뒤져 찾은 좋은 뜻의 단어로 만든 조합

회칙
- 만장일치제
- 회비는 한달에 한번, 3000원
- 모임에서의 비밀을 지킨다. 발언자의 요청에 의하여 비밀여부를 결정하고 어길시에는 7770원의 벌금
- 회원은 총 10명으로 서로 번호를 매기고, 각자 역할을 분배했다
(팀장, 회계, 행사장, 연락장, 감사원, 기록장)
- 자기 임무를 불성실하게 수행했을때는 8880원의 벌금
- 연락체계는 10->6->7->1->5->3->9->8->2->6->10


뭐 이런식이었다.
이런 회칙들을 만들고 얼마나 성실히 활동을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기억이 나지 않는 것으로 봐서는 아마 활발한 활동은 없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


모임이 결성될 당시부터 멤버들간에 묘한 애정 관계를 포함한 인간관계가 복잡하게 얽혀있었다.
멤버중에는 남자가 4명, 여자가 6명이며, 남자중 나를 제외한 3명은 예전부터 동네친구였고.
여자아이들도 각자 오랜 친분이 있는 사이도 있고, 아닌 사이도 있고..
간부수련회에서 만난 친구들중 몇명은 서로 뜻이 통해 사귀기도 했었고
그 사이에 또 얽히고 얽히는 복잡한 애정관계.
또 이런저런 일들이 개인적으로 계속 발생하면서 모임은 제대로 운영되지 않았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가 각각 갈렸고, 남자들중에 3명은 같은 학교 한 명은 다른 학교로 갔다
여자아이들중 3명은 같은 학교, 나머지는 다른 학교로 갔고.
점점 모임을 가지는 횟수가 줄어들기도 했고, 모임으로 만나는 횟수보다는
개인적인 관계로 만나는 횟수가 늘어갔다. 모임의 멤버이기 이전에 이미 다들
서로 절친한 친구였기에 모임은 와해되어도 관계는 계속 이어져 가는 것이었다

이 모임에서 내 위치는 참으로 애매한 관계였다.
처음 모임에 들어갈때는 간부수련회에서 갓 만나서 친해진 친구들이 전부였으며
이중 남자아이들 셋은 서로 절친한 친구였다. 나는 그 사이에 낀 셈이었고 늘 알게 모르게 이상한 소외감을 느꼈다
여자아이들과도 친하긴 했으나, 내 주위에 애들이 워낙에나 독특한 애들이 많았다.

한 친구는 어릴때부터 신해철에 빠져있던 아이였는데 이놈은 점점 하는 짓이 신해철을 닮아가더니
신설 고등학교를 다니며 전교 학생회장을 하며 밴드를 조직해서 음악활동을 열심히 하더니
어느날에는 자기가 만든 곡이라며 들어보라고 mp3 파일을 건내주기도 했다.


다른 친구는 목사님 아들이었는데 자신의 신념이 무척이나 강하고 심지가 곧은 놈이었다.
이 교회의 골방은 24시간 늘 열려있었고  친구들의 아지트가 되어 남자놈들 넷은 늘 이 교회에서 만났다.
교회도 안 다니면서 자꾸 들락날락 거릴수도 없었기에 넷은 자연히 이교회를 다녔고 이 큰 믿음 없는 신앙생활은 고등학교 3년을 지속했고 대학에 가서야 끝났다.
이 친구는 자신의 확고한 신념에 따라 법대에 들어갔고, 한 1년전쯤 집에 가는 전철에서 만났는데
군대를 제대하고 다시 학교를 열심히 다니면서 고시를 준비중이라고 했다.

한 친구는 중학교때 학생회장을 하던 놈인데 중학교때는 늘 반듯반듯한 모습만 보아 왔는데
같은 고등학교를 갔고,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는 중학교때의 모습과 다르게 조금 불량한 친구들과 다니기도 하고
겉모습도 예전의 반듯한 모습보다는 조금 껄렁한 모습으로 변했다.
고3이 되어서는 체대인가 사회체육과를 간다고 했던것같은데 정확하게는 기억이 안 난다.

여자친구들중 몇명이랑도 특히 친하게 지냈는데 이야기가 너무 길어질듯해서 일단 여기까지....
아무튼 이렇게 나름대로 예민하다면 예민한 사춘기시절을 나는 이 9 명의 친구들과 함께 보냈고
지금 내가 이중 연락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다.

왜 없나 하고 생각해봤더니 그 시절의 나는 너무도 불안한 인간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인간관계라는게 서로 감정의 교류를 갖고 마음을 주고 받아야 함에도
나는 간절히 "친구가 되고 싶다" 는 마음만 있었을뿐 어떤 의사표시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모습속에서 속으로 불만만 갖고 혼자 실망하고 그랬던것같다.

물론 그 모임. 그 친구들의 구성에서 내 위치는 누구와도 특별히 친하지 않은
애매한 위치였고. 그 친구들의 배려나 그런 것들이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중요한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였고. 그 당시의 나는....
매우 이상하고 철이 없었으므로 그런건 도저히 할 상황이 아니었다


돌이켜보면 참 추억이 많은 친구들이었다
고등학교때 이 친구들의 소개로 다른 친구들도 많이 만났고
중학교때 한달인가 두달동안 사귀었던 첫 여자친구도 이 친구들의 소개였고
고등학교때 했던 몇번의 소개팅도 이 친구들과의 연락을 통한 것이었으니까




참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이 시절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 암흑과 같던 고등학교 시절을 다시 채색할 수 있을텐데

이때의 인간관계 형성 방식이 대학교때까지 이어졌고 대학 초기에 나는 한참동인 인간관계때문에 힘들었었다
다행히 몇몇 좋은 사람들을 만나 마음을 열었고, 내 단점을 조금씩 알게되고
이제는 지극히 극단에 가있던 그 성향을 왠만큼 중화시켰고. 이렇게 글도 쓸수 있으니

그래도 안타까운건 안타까운거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삶이 25년이면 그중 4년은 이 내용에 속하니
내 삶의 16%라.


* 내가 고2때인가 처음  id라는 것을 만들었다.
그때 아이디는 adutj4. 난 정씨.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숫자는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