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침묵>
2004. 2. 25. 09:34ㆍgood
읽고 또 읽으면
글속의 인물중에 나랑 비슷한 인물을 찾게 되고
그 인물의 특성이 나랑 참 비슷함을 느끼고 흠찟 놀라면서
그랬구나. 껍데기였어. 라는 생각이 드는 글
사람은 무섭지만
그래도 사람은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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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침묵>
나는 오자와씨에게, 여태껏 싸워서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으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오자와씨는 뭔가 눈부신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또 그런 걸 물으십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눈빛은 아무래도 평상시의 그답지 않다. 거기에는 뭔가 번쩍하고 빛을 내뿜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는 그 빛을 금방 거둬들이고 평소 온화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별다른 뜻은 없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은 정말 별 뜻 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아주 약간의 호기심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 아마도 쓸데없는 질문을 ―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하지만 오자와씨는 그 이야기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참고 있는 것도 같았고, 뭔가 망설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멍하니 창밖에 늘어선 은빛 제트여객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그가 중학교에 들어간 무렵부터 줄곧 권투도장에 다니고 있다는 얘길 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대기시간을 죽이며 두서없이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이 나온 것이었다. 그는 서른 하나이지만 지금도 주에 한번은 도장에 가서 트레이닝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시절에는 몇 번이나 대항전의 대표선수를 지냈었다. 전국체전 선수로 뽑힌 적도 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좀 의외였다. 그때까지 몇 번인가 함께 일을 했었지만 오자와씨는 20년 가까이나 권투를 할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하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무상으로는 성실하고 참을성이 많으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무리하게 떠맡기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언성을 높 이는 법도, 눈썹을 치켜 뜨는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푸념을 늘어놓는 걸 들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말하자면 남들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겉모습만 해도 아주 온후하고 태평스러워서, 공격적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공항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자와씨는 나와 함께 지금부터 니가타에 가려는 참이었다. 계절은 12월 초순으로, 하늘은 뚜껑이라도 씌운 것처럼 무겁게 흐려 있었다. 니가타는 아침부터 눈이 심하게 내리고 있는지 비행기 출발이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지고 있는 듯했다. 구내 방송에서는 지연을 알리는 아나운스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고, 발목이 붙들린 사람들은 지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난방이 다소 지나치게 들어와서 나는 줄곧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한번도 없습니다." 오자와씨는 한동안 침묵하고 있더니 별안간 그렇게 말했다. "나는 권투를 시작한 뒤로 사람을 때린 일은 없습니 다. 그건 권투를 시작할 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얘깁니다. 절대 글러브를 끼지 않고 링 밖에서 사람을 때려서는 안된다구요. 보통 사람이 누군가를 쳤다가 까딱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죠. 하지만 권투를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흉기를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딱 한번 사람을 친 적이 있습니다." 하고 오자와 씨가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막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죠. 변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저는 아직 권투 기술이라곤 무엇 하나 전혀 배운 게 없었습니다. 당시 제가 도장에서 한 것이라고는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한 메뉴뿐이었죠. 줄넘기라든가 스트레칭이라든가 러닝이라든가,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치려고 마음먹고 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는 그때 굉장히 화가 나서, 무슨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퉁기듯이 팍 손이 나갔던 겁니다.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상대방을 후려갈긴 뒤였죠. 그렇게 친 뒤에도 아직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자와씨가 권투를 시작한 계기는 숙부가 권투 도장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무데나 있는 엉성한 동네 도장이 아니라 동양챔피언을 배출한 적이 있는, 틀이 딱 잡힌 일류 도장이었다. 오자와씨의 부모는 그에게 몸을 단련하기 위해 그 도장에 다녀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들은 아들이 늘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는 걸 염려했던 것이다. 오자와씨는 권투를 배운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숙부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데 다 뭐 조금만 배워볼까,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면 되지, 하는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전철을 타고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숙부의 도장에 몇 개월쯤 다니는 사이에 그는 그 경기에 대해 의외로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가 권투에 이끌린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과묵한 스포츠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극히 개인적인 스포츠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본 적도, 접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그 세계는 그의 마음을 무작정 쿵쾅거리게 했다. 손위 남자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땀냄새며, 글러브 가죽이 맞닿을 때의 ㅃ ㅃ 하는 단단히 죄어진 소리며, 근육을 효과적으로 재빨리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과묵한 몰두가 그의 마음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로잡아갔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도장에 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적지 않은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제가 권투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깊이가 저를 사로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하면 때리고 맞고 하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건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은 설령 지더라도 상처를 입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지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권투란 건 ―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만 ― 그런 행위였습니다.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서면 때때로 자신이 깊디깊은 구덩이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굉장히 깊은 구덩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어둠을 상대로 싸웁니다. 고독합니다. 하지만 슬프진 않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한 마디로 고독하다고 해도 거기엔 여러 가지 종류의 고독이 있습니다. 신경이 발기발기 찢기듯 쓰라리고 슬픈 고독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깍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노력을 하면 그만큼은 돌아옵니다. 그것이 제가 권투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자와씨는 그대로 20초쯤 말이 없었다.
"저는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말했다. "될 수 있으면 이런 얘기는 까맣게 잊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물론 잊혀지진 않습니다. 잊고 싶은 일은 절대 잊혀지지 않죠." 오자와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오자와씨가 그때 때린 사람은 동급생이었다. 아오키라는 것이 그의 이름 이었다. 오자와씨는 처음부터 그가 싫었다. 왜 그렇게 싫었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갔지만, 한눈에 그가 너무 너무 싫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그 정도로 분명하게 싫어하게 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는 말했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일생에 한 번쯤은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 싶어요. 무조건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거요. 저는 의미 없이 사람을 싫어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그렇게 되는 상대방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도 이쪽에 대해 똑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아오키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거의 일 이등을 다퉜죠. 제가 다닌 학교는 남자아이들뿐인 사립학교였는데, 그는 꽤 인기가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반에서도 눈에 띠였고, 교사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았죠. 공부를 잘했지만 결코 잘난 척하지 않고, 탁 트인 성격에다 태연스레 농담도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듯한 구석도 좀 있었구요…. 하지만 저는 그 배후에서 희미하게 엿보이는, 요령 좋고 본능적으로 타산적인 점이 역겨워서 처음부터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거냐고 물어도 대답할 순 없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가 없으니까 요. 그저 저는 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몸에서 발산하는 에고와 프라이드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체취를 생리적으로 참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오키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냄새를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반친구들이 그를 꽤 괜찮은 녀석인데, 쯤으로 생각했었죠. 저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 물론 쓸데없는 얘긴 전혀 하지 않았지만 ― 어쩐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겁니다.
아오키와 저는 온갖 의미에서 대조적인 입장에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냐 하면 말수가 적고, 반에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원래부터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혼자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친구 비슷한 상대들도 몇 명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깊은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숙한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동급생과 사귀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아버지가 가지고 계 신 클래식음악 레코드판을 듣거나 권투도장에 가서 손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 좋았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몸집도 그렇게 눈에 띄는 쪽은 아닙니다. 성적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교사들은 제 이름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타입이었죠. 그러니까 저도 별로 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권투도장에 다니는 것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음악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아오키라는 아이는 무얼 해도 진흙탕 속의 백조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어쨌든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하죠. 머리 회전이 빨랐습니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걸 손바닥 들여다보듯 척척 알아차리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보고 교묘하게 자신의 대응을 바꿉니다. 그러니까 다들 아오키에게 감탄하는 거죠. 쟨 참 머리도 좋은 대단한 녀석이야, 라구요. 하지만 저는 감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오키라는 인간은 천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게 머리가 좋다는 거라면 저는 머리 같은 거 좋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빠릿빠릿하죠. 하지만 그에게는 자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것만큼은 꼭 호소하고 싶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런 자신의 재치에 도취돼 있는 겁니다. 일정한 궤도에서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알아차린 건 아마도 저 하나였을 겁니다.
아오키도 필시 그런 저의 기분을 어렴풋이 알아챘을 겁니다. 눈치가 빠른 인간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저에게 왠지 모를 일종의 불쾌함을 느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닙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 무렵부터 저 자신의 세계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반에서 저만큼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렸었고, 스스로는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아마도 자연히 그런 것을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얕보았던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무언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오키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날 저는 기말시험의 영어 테스트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제가 시험에서 일등을 하게 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그 때 뭐였는지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 그게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만 ― 만약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1등을 하면 사주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시험에서 꼭 1등을 해야지 하는 마음에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시험 범위는 구석부터 구석까지 체크했습니다. 짬만 나면 동사의 활용을 외웠습니다.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되풀이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려서 1등이 된 것쯤 저로서는 이상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도 놀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오키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왜냐면, 아오키는 영어 시험에서 줄곧 일등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답안지를 나눠주면서 그런 얘기를 농담처럼 해서 아오키를 놀렸습니다. 아오키는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틀림없이 자신이 웃음거리가 된 듯한 기분이었겠죠. 선생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다 잊어버렸지만,그 며칠쯤 뒤에 아오키가 저에 대해 뭔가 별로 좋지 않은 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시험에서 컨닝을 했다는 거죠. 그것 말고는 제가 일등을 할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반친구 몇 명인가로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그걸 듣고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건 웃어넘기며 묵살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학생이었죠. 그렇게까지 냉정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점심시간에 아오키를 인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그런 소릴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습니다. 아오키는 시치미를 뚝 뗐습니다. 야, 이상한 트집 잡지마,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너한테 이러쿵저러쿵 얘길 들을 만한 거 없어, 어쩌다가 일등 한번 한 거 가지고 우쭐하지 말라구, 그런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가볍게 부딪치듯이 밀치며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저보다 자기가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힘도 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제가 반사적으로 아오키를 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아오키의 왼쪽 뺨에 힘껏 스트레이트를 처넣고 있었습니 다. 아오키는 옆으로 쓰러지면서 그 바람에 벽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쾅 하고 큰 소리가 났을 정도였습니다. 코피가 터져 흰 셔츠 앞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멍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제 주먹이 그의 광대뼈에 닿는 순간부터 저는 상대방을 친 일을 후회했습니다. 이런 짓을 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분노로 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오키에게 사과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사과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아오키만 아니었어도 저는 그 자리에서 깎듯이 사과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오키라는 녀석에게만은 도저히 사과할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오키를 때린 것을 후회했습니다만, 아오키에 대해 나쁜 짓을 했단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 놈은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은 해충 같은 인간인 겁니다. 사실 그런 놈은 누군가에게 짓밟혀도 쌉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때려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그것은 직관적인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벌써 상대방을 때린 겁니다. 저는 아오키를 그곳에 남겨 둔 채 자리를 떴습니다.
오후 수업에 아오키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대로 집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줄곧 제 머릿속에서 언제까지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얼 하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위장 바닥에 뭔가 먹먹한 것이 고여 있어 전연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벌레를 삼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자신의 주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 다. 그리고 난 얼마나 외로운 인간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그런 기분을 들게 한 아오키라는 녀석을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미워했습니다."
"아오키는 이튿날부터 저를 줄곧 무시하려고 애썼습니다. 저 같은 건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시험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저는 두 번 다시 시험공부에 힘을 쏟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 건 저에게 이미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겁니다. 그래서 공부는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하고, 남은 시간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숙부의 도장에는 계속 다녔습니다. 아주 열심히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덕분에 저의 권투 기술은 중학생치곤 상당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 몸이 점점 변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깨가 벌어지고, 가슴이 두꺼워졌습니다. 팔뚝이 탄탄해지고 뺨 근육이 바짝 당겨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참 멋진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밤 옷을 홀랑 벗고 화장실의 큰 거울 앞에 섰습니 다. 그 무렵에는 그런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그 학년이 끝나자 아오키와는 다른 반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푹 놓였습니다. 매일 교실 안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아오키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그 싫은 기억도 멀리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아오키는 줄곧 저에게 복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자존심이 강한 인간이 더러 그렇듯이, 아오키는 복수심이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번 받은 모욕을 쉽게 잊어버릴 인간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는 제 발목을 잡아챌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쭉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저와 아오키는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학교였습니다. 매년 반이 바뀌었지만 아오키는 계속 다른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그 교실에서 얼굴을 마주쳤을 때, 굉장히 싫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빛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와 눈을 마주친 후, 위 속에서 예전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묵직함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불길한 예감이란 거죠."
오자와씨는 거기에서 입을 다물고 눈앞에 놓인 커피 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얼굴을 들어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내 얼굴을 보았다. 창밖에서 제트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보잉737이 쐐기처럼 구름 속을 일직선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자와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1학기는 아무 일 없이 평온 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아오키도 평소와 같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로부터 거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류의 인간은 성장도 후퇴도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할뿐입니다. 아오키의 성적은 변함없이 톱 클래스였고 인기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비결 같은 걸 10대에 이미 능숙하게 쥐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겠죠. 어쨌든 우리는 가능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교실 안에 그런 싫은 상대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저에게도 그 일단의 책임은 있으니까요.
얼마 후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고교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특별히 가리지만 않는다면 어딘가 적당한 대학에는 들어가겠지 했으므로 수험공부라 할 만한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학교의 예습과 복습을 대충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부모님도 잔소리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도장에 가서 트레이닝을 했고, 남은 시간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레코드를 듣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눈빛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죠. 우리 학교는 중학 고교 일관교육의, 이른바 수험교였습니다. 어느 대학에 몇 명이 들어가느냐, 어느 대학 입학한 수가 몇 위였냐, 그런 것들에 선생들도 눈빛을 바꿔가며 일희일비하는 학교였습니 다. 학생들도 3학년쯤 되면 완전히 열이 올라서 교실 공기도 무척 긴장 상태가 됩니다. 저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갔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 데다, 6년 동안 끝까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를 결국 끝까지 한 사람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교시절에 제대로 어울린 상대라고는 도장에서 만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직장인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람들과는 아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다같이 어딘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 다. 그들은 저희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고, 하는 얘기도 보통 제가 반에서 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갖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만약 제가 권투를 하지 않았더라면, 숙부의 그 도장에 다니 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얼마나 고독했을까 싶습니다. 그런 걸 상상하면 지금도 좀 오싹하죠.
여름방학 한 중간에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같은 반 아이 하나가 자살을 한 겁니다. 마쓰모토라는 이름의 아이였습니다. 마쓰모토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기 보단 아예 인상이란 게 없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 아이였습니다. 죽었단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반이었긴 했지만, 저랑 그는 아마 두어 번 이상은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호리호리하고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아이였다, 는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그가 죽은 건 8월 15일 바로 며칠 전이었습니다. 종전기념일과 장례식이 한 날이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죠. 굉장히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에 전화가 와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하며 장례식에 다들 참석하기로 했으니까 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급 전체가 장례식에 참례했습니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었답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유서 비슷한 걸 남겨놓긴 했지만 거기에는 단 한 마디, 더 이상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만 써 있었습니다. 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지, 등등의 자세한 이유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았습니다. 대충 그런 얘기였습니다. 당연히 학교측은 난리가 났죠. 장례식 후에 학년 전원이 학교에 소집되었고, 교장이 앞에 나와 얘기했습니다. 마쓰모토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둥, 그의 죽음의 무게는 우리들 전원이 확고히 지고 나가야만 한다는 둥, 이 슬픔을 넘어서 전원 한층 정진을 도모하자…는 둥, 그런 식의 진부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희 반만 교실에 모였습니다. 학생주임과 담임교사가 앞에 나와, 만약 마쓰모토의 자살에 뭔가 분명한 원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딱 바로잡아야만 한다, 고 그들은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 반 가운데 뭔가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있다면 정직하게 말해주기 바란다고. 다들 쥐죽은 듯 조용할 뿐 한 마디라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죽은 급우가 딱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죽음을 택할 건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학교가 싫으면 학교 같은 데 안가면 그만이죠. 게다가 반년만 있으면 싫어도 학교를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굳이 죽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무슨 노이로제였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자나깨나 수험공부 얘기만 나오니, 머리가 이상해진 인간이 한 명쯤 나온다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 신학기가 시작되자, 뭔가 기묘한 공기가 반에 떠돌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저한테 서먹서먹하게 대했습니다. 무슨 용건이 있어 주위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도 어쩐지 어색하고 머뭇대는 듯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마 그냥 기분 탓이겠지 했습니다. 어쩌면 다들 전체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그러려니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해서 5일쯤 지났을 무렵, 담임이 갑자기 저를 불렀습니다. 방과 후에 남아서 교무실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담임 선생은 저에게 너 권투 도장에 다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별로 교칙 같은데 위배되는 건 아닙니다. 언제부터 다 녔나, 하고 그는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라고 대답했습니다. 니가 중학교 때 아오키를 때렸다는 건 사실이냐고 담임은 추궁했습니다. 사실이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니까요. 그건 권투를 시작하기 전이냐, 시작한 후냐, 하고 담임은 물었습니다. 시작한 훕니다, 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아직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었습니다, 처음 석 달쯤은 글러브도 끼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담임은 그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너는 마쓰모토를 때린 적이 있냐, 고 담임은 물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저는 마쓰모토라는 아이와는 거의 말을 한 적도 없습니 다. 때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째서 제가 마쓰모토를 때려야만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마쓰모토가 학교에서 늘 누군가한테 맞고 있었던 것 같다, 하며 담임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얼굴이나 몸에 멍이 들어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자주 있었댄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학교에서, , 누군가한테 맞아서 용돈을 빼앗겼다는 거다. 하지만 마쓰모토는 그 이름을 그 이름을 어머니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했다간 얻어터지고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 녀석은 생각 끝에 자살한 거다. 불쌍하지,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거야. 무척 심하게 맞았었다구. 우리는 누가 마쓰모토를 때렸는지 조사하고 있다. 만약 짚이는 데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라. 그럼 얘기는 원만하게 처리될 거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너, 그건 알고 있겠지.
여기엔 아오키가 얽혀 있다는 게 팍 와 닿았습니다. 아오키는 마쓰모토라는 아이가 죽은 것을 정말 능란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그는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제가 권투 도장에 다니고 있다는 걸 어딘가에서 알았던 겁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리고 마쓰모토가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겁니다. 그 다음은 간단하죠.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그만입니다. 담임한테가서 제가 도장에 다닌다는 것과 제가 예전에 자기를 때렸던 일을 담임한테 말하면 되는 겁니다. 물론 적당히 부풀리긴 했겠죠. 저에게 심한 협박을 당해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던가, 피가 엄청나게 났었다던가, 그런 얘길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금방 들킬 만한 아주 단순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는 용의주도한 아이였으니까요. 그는 단순한 사실 하나 하나에 교묘한 색깔을 입히고, 최종적으로 거기에 부정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을 형성했을 겁니다. 그의 그런 수법이 눈에 선합니다.
담임은 저를 용의자로 찍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권투 도장에 다니는 인간은 많건 적건 불량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게다가 저는 원래부터 담임 마음에 들만한 타입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흘 뒤 경찰에 불려갔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저 소문인 겁니다. 정말 서글프고 억울했습니다. 아무도 제 말 같은 건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공정해야 할 선생조차 절 감싸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는 단순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쓰모토와는 거의 얘기를 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확실히 나는 4년전에 아오키라는 학생을 때렸다, 하지만 그건 흔히 있는 하찮은 싸움이었고, 그후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그뿐입니다. 자네가 마쓰모토군을 때렸다 는 소문이 있다고 담당 경관이 말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하고 저는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악의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문을 낸 겁니다, 라구요. 경찰도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증거도 없었던 겁니다. 그저 소문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찰에 불려갔던 얘기는 곧 학교에 퍼졌습니다. 은밀히 처리됐어야 할 텐데 어딘가에서 새고 만 겁니다. 하여튼 그래서, 다들 저를 보는 눈이 결정적으로 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경찰에 불려갔을 때는 불려갈 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다들 저를 마쓰모토를 때린 사람으로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오키가 아이들에게 대체 얼마나 그럴 듯한 얘기를 한 건지, 반에 어떤 세론이 형성돼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지독한 얘기였을 겁니다. 어쨌든 반의 누구도 저와는 말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작당이라도 한 듯이 ― 아마 실제로 어딘가에서 작당을 한 것 같지만 ―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 니다. 뭔가 꼭 필요한 용건이 있어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도 제 곁에 다가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들 저를, 마치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이 피하고 있었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려고 했던 겁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사들도 저와는 가능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출석 체크를 할 때 제 이름을 부릅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저를 지명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심한 건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경기를 해도 저는 사실상 어느 팀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저와 짝을 이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한번도 저를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았구요. 저는 묵묵히 학교에 가서, 묵묵히 수업을 받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매일 매일 계속됐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2주, 3주가 지나는 사이 저는 점점 식욕을 잃어갔습니다. 체중도 줄었습니다. 밤에도 잠을 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누우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온갖 이미지가 줄줄이 떠 올라 도저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도 어째 늘 머리가 멍했습니다. 자신이 지금 일어나 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것조차 점점 분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때때로 권투 연습을 쉬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걱정이 되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피곤할 뿐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설령 부모님에게 다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분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부모님은 제가 학교에서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지 끝까지 모르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일을 하고 계셔서 자식을 상대해 주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에 틀어박혀 그냥 멍하니 천장을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온갖 생각을 떠올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갖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가장 많이 상상했던 건 아오키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오끼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때립니다. 너 같은 놈은 인간 쓰레기라고 하면서, 마음껏 두들겨 팹니다. 상대가 비명을 질러도, 울면서 용서를 빌어도, 때리고 때리고, 얼굴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팹니다. 하지만 때리고 있는 사이에 점점 기분이 나빠집니다. 처음에는 괜찮습니다. 그것 참 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점점 역겨운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오키를 때리는 광경을 상상하는 걸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히 아오키의 얼굴이 거기에 떠오르고, 정신이 들면 저는 아오키를 패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때리기 시작하면 그걸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상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실제로 기분이 나빠져서 토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 몰랐습니다.
모두의 앞에 나가, 양심에 꺼림칙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할까도 했습니다. 내가 뭔가 벌을 받을 만한 일을 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해 달라. 증거가 없다면 나를 이런 식으로 벌하는 건 그만 둬 달라. 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아오키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녀석들을 상대로 일일이 변명 따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변명을 하면 제가 밀리고 있다는 걸 결과적으로 아오키에게 알리는 게 됩니다. 저는 아오키 같은 인간과 같은 씨름판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책이 없었습니다. 아오키를 때릴 수도 벌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 히 버티는 것뿐이었습니다. 반년 남았습니다. 반년만 더 있으면 학교도 끝날 테고, 그러면 더 이상 아무하고도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반년 동안 어떻게든 그 침묵으로 버티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6개월을 견딜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음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면 매직으로 달력을 하루, 하루 새까맣게 칠해 나갔습니다. 간신히 오늘이 끝났다, 간신히 오늘이 끝났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숨통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느날 아침 제가 아오키와 같은 전차에 타지 않았더라면, 정말 숨통이 막혀 죽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알겠지만, 제 신경은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데까지 몰려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시작된지 한 달이 좀 넘었을 즈음이었습니다. 학교로 가는 전차 안에서 우연히 아오키와 딱 마주쳤던 겁니다. 전차는 변함없이 만원이어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 바로 앞에 아오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두세 사람 건너, 누군가의 어깨 너머로 아오키의 얼굴이 보였습니 다. 저와 그는 꼭 마주 보는 꼴로 얼굴을 맞닥뜨렸던 겁니다. 그도 저를 알아차렸습니다. 얼마 동안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 무렵 저는 처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잠도 잘 자지 못한 데다 노이로제 기미도 있었으니까요. 처음에 아오키는 냉소적인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맛이 어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그 일들이 전부 아오키가 꾸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오키도 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잠시 꼼짝 않고 서로를 노려봤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있는 사이에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때까지 느낀 적이 없던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오키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때로는 죽이고 싶을 만치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만원전차 안에서 제가 느낀 것은 분노라든가 증오라기 보다는, 오히려 슬픔이나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깊은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겁니다. 틀림없이 저 녀석은 진짜 기쁨이나 진짜 자부심 같은 것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 속 깊은 데서 솟아오르는 듯한 그 잔잔한 떨림을 그 녀석은 틀림없이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을 거라구요.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깊이라는 것이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저한테 깊이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깊이라는 것의 존재를 이해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도 없습니다. 그건 텅비고 밋밋한 인생입니다. 얼만큼 남의 눈을 끌건, 아무리 겉으로 의기양양하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잠자코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더 이상 아오키를 패 주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오키 따위는 어찌 됐든 상관 없어져 버린 겁니다. 정말로, 저도 깜짝 놀랄 만큼 어찌 됐든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후 다섯 달을 이 침묵으로 견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자부심이라는 게 남아 있었습니다. 아오키 같은 인간에게 이대로 질질 끌려갈 수는 없다, 굳게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눈으로 아오키를 바라보았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리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아오키 역시 눈을 피했다간 지는 거라고 생각했겠죠. 전차가 다음 역에 닿을 때까지 우리들은 어느 쪽도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아오키의 눈이 떨렸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떨렸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권투를 하다보면 상대방 눈의 움직임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그건 다리를 전혀 뗄 수 없게 된 복서의 눈입니다. 스스로는 움직이려 하지만 사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발은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발이 달라붙으면 어깨가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펀치에 맥이 빠져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런 눈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그게 왜 그런 건지 본인도 모릅니다.
그날을 경계로 저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밥도 잘 먹었고, 권투 연습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오키한테 이긴다던가, 뭐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인생 그 자체에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 자신이 경멸하고 모멸하는 것에 그렇게 쉽게 찌부러질 순 없는 겁니다. 저는 그대로 다섯 달을 참았습니다. 아무하고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난 틀리지 않았어, 모두가 틀린 거야, 자신에게 계속 다짐했습니다. 매일 가슴을 쫙 펴고 학교에 가서, 가슴을 쫙 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나오자 큐슈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거기까지 가면 고교시절에 아는 사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자와씨는 거기까지 말하자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 더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양했다. 이미 아까부터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강렬한 경험을 하면 인간이란 좋든 싫든 변하고 맙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좋은 쪽으로도 변하고, 나쁜 쪽으로도 변합니다. 좋은 쪽으로 말하자면, 저는 그 일을 계기로 상당히 인내심 많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년 동안 맛본 것에 비하면 그후로 경험한 역경 같은 건 역경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하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힘든 일, 쓰라린 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받고 있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에 대해서도 보통사람 이상으로 민감해졌습니다. 이건 플러스 점이죠. 그런 플러스 특질을 얻음으로써 저는 그후 몇 명인가 진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이너스도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인간이라는 것을 아예 전혀 신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불신이랄지, 그런 건 아닙니다. 저한테는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서로를 지켜줍니다. 그런 건 신뢰 없이는 안되는 겁니다. 하지만 말이죠,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설령 지금 이렇게 평온 무사하게 지내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만약 뭔가 끔찍이 악의에 찬 것이 다가와 이런 걸 뿌리째 뒤엎어버린다면, 설령 자신이 행복한 가정이며 좋은 친구들에 둘러 싸여 있어봤자 한 치 앞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구요. 어느날 갑자기 제가 하는 말을, 또는 당신이 하는 말을, 누구 한 사람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겁니다.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요전에는 그것이 여섯 달로 어떻게든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 다시 한번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게 얼만큼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다음엔 제가 얼마만큼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때때로 정말 무서워집니다. 한밤중에 그런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저는 아내를 깨웁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뜨립니다. 한 시간쯤 우는 적도 있습니다. 무서워서,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창밖의 구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구름은 아까부터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관제탑도 비행기도 수송차량도 트랩도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도 그런 두터운 구름 그림자에 온갖 색깔을 빨려버리고 있었다.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아오키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오키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데다, 그런 거에 대해선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런 인간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관련을 맺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좌우지간 도망치는 겁니다.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얘기죠.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닙니 다. 그런 인간은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동시에 저는 아오키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단하단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 능력,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쥐고 흔드는 능력 ― 그런 건 아무에게나 있는 건 아니죠. 그런 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게 일종의 능력이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무섭게 생각하는 건, 아오키같은 인간이 떠들어대는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줄 모르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패거리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무의미하게, 결정적으로 상처 입히고 있을지 모른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밤중에 꿈을 꾸는 것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꿈속에서는 침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얼굴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침묵이 차디찬 물처럼 모든 것에 점점 스며듭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흐물흐물 녹아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녹아들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겁니다."
오자와씨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저었다.
나는 그대로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오자와씨는 테이블 위에 양손을 깍지끼고 그저 가만히 잠자코 앉아 있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맥주라도 마실까요?" 조금 후 그가 말했다. 마시죠, 하고 나는 말했다. 확실히 맥주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
글속의 인물중에 나랑 비슷한 인물을 찾게 되고
그 인물의 특성이 나랑 참 비슷함을 느끼고 흠찟 놀라면서
그랬구나. 껍데기였어. 라는 생각이 드는 글
사람은 무섭지만
그래도 사람은 인간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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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침묵>
나는 오자와씨에게, 여태껏 싸워서 누군가를 때린 적이 있으세요, 하고 물어보았다.
오자와씨는 뭔가 눈부신 것이라도 본 것처럼 눈을 가늘게 뜨고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왜 또 그런 걸 물으십니까?" 하고 그는 말했다.
그 눈빛은 아무래도 평상시의 그답지 않다. 거기에는 뭔가 번쩍하고 빛을 내뿜는 것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 그는 그 빛을 금방 거둬들이고 평소 온화한 얼굴로 되돌아갔다.
별다른 뜻은 없어요, 하고 나는 말했다. 그것은 정말 별 뜻 없는 질문이었던 것이다. 아주 약간의 호기심이 나에게 그런 질문을 ― 아마도 쓸데없는 질문을 ― 하게 만들었다. 나는 그후 바로 화제를 바꿨다. 하지만 오자와씨는 그 이야기에는 그다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줄곧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뭔가 참고 있는 것도 같았고, 뭔가 망설이고 있는 것도 같았다. 나는 할 수 없이 멍하니 창밖에 늘어선 은빛 제트여객기를 바라보았다.
내가 그런 질문을 하게 된 계기는 그가 중학교에 들어간 무렵부터 줄곧 권투도장에 다니고 있다는 얘길 했기 때문이었다. 비행기 대기시간을 죽이며 두서없이 이런저런 세상 사는 이야기를 하다가 그런 말이 나온 것이었다. 그는 서른 하나이지만 지금도 주에 한번은 도장에 가서 트레이닝을 계속하고 있다고 했다. 대학시절에는 몇 번이나 대항전의 대표선수를 지냈었다. 전국체전 선수로 뽑힌 적도 있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좀 의외였다. 그때까지 몇 번인가 함께 일을 했었지만 오자와씨는 20년 가까이나 권투를 할만한 사람으로는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차분하고 별로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업무상으로는 성실하고 참을성이 많으며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무리하게 떠맡기는 일은 한번도 없었다. 아무리 바빠도 언성을 높 이는 법도, 눈썹을 치켜 뜨는 일도 없었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거나 푸념을 늘어놓는 걸 들은 적은 한번도 없었다. 말하자면 남들이 호감을 갖지 않을 수 없는 사람이었다. 겉모습만 해도 아주 온후하고 태평스러워서, 공격적이라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래서 문득 그런 질문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우리는 공항 레스토랑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오자와씨는 나와 함께 지금부터 니가타에 가려는 참이었다. 계절은 12월 초순으로, 하늘은 뚜껑이라도 씌운 것처럼 무겁게 흐려 있었다. 니가타는 아침부터 눈이 심하게 내리고 있는지 비행기 출발이 예정보다 상당히 늦어지고 있는 듯했다. 구내 방송에서는 지연을 알리는 아나운스가 계속 울려 퍼지고 있었고, 발목이 붙들린 사람들은 지친 표정을 띠고 있었다. 레스토랑의 난방이 다소 지나치게 들어와서 나는 줄곧 손수건으로 땀을 닦고 있었다.
"기본적으로는 한번도 없습니다." 오자와씨는 한동안 침묵하고 있더니 별안간 그렇게 말했다. "나는 권투를 시작한 뒤로 사람을 때린 일은 없습니 다. 그건 권투를 시작할 때 귀에 못이 박힐 정도로 듣는 얘깁니다. 절대 글러브를 끼지 않고 링 밖에서 사람을 때려서는 안된다구요. 보통 사람이 누군가를 쳤다가 까딱하면 안 좋은 일이 생기죠. 하지만 권투를 하는 사람인 경우에는 그냥 끝나지 않습니다. 흉기를 사용하는 것과 똑같은 짓이니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딱 한번 사람을 친 적이 있습니다." 하고 오자와 씨가 말했다. "중학교 2학년 때였습니다. 막 권투를 배우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죠. 변명하는 건 아니지만, 그때 저는 아직 권투 기술이라곤 무엇 하나 전혀 배운 게 없었습니다. 당시 제가 도장에서 한 것이라고는 기초체력을 키우기 위한 메뉴뿐이었죠. 줄넘기라든가 스트레칭이라든가 러닝이라든가, 그런 것뿐이었습니다. 게다가 치려고 마음먹고 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저는 그때 굉장히 화가 나서, 무슨 생각을 할 틈도 없이 퉁기듯이 팍 손이 나갔던 겁니다. 멈출 수도 없었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는 이미 상대방을 후려갈긴 뒤였죠. 그렇게 친 뒤에도 아직 분노로 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습니다."
오자와씨가 권투를 시작한 계기는 숙부가 권투 도장을 경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아무데나 있는 엉성한 동네 도장이 아니라 동양챔피언을 배출한 적이 있는, 틀이 딱 잡힌 일류 도장이었다. 오자와씨의 부모는 그에게 몸을 단련하기 위해 그 도장에 다녀보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들은 아들이 늘 방안에 틀어박혀 책만 읽고 있는 걸 염려했던 것이다. 오자와씨는 권투를 배운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지만 숙부를 인간적으로 좋아한데 다 뭐 조금만 배워볼까, 영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그만두면 되지, 하는 정도의 가벼운 기분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전철을 타고 한 시간 가까이 걸리는 숙부의 도장에 몇 개월쯤 다니는 사이에 그는 그 경기에 대해 의외로 마음이 끌리게 되었다. 그가 권투에 이끌린 가장 큰 이유는 그것이 기본적으로 과묵한 스포츠였기 때문이었다. 또한, 극히 개인적인 스포츠였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그때까지 본 적도, 접한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 그리고 그 세계는 그의 마음을 무작정 쿵쾅거리게 했다. 손위 남자들의 몸에서 뿜어 나오는 땀냄새며, 글러브 가죽이 맞닿을 때의 ㅃ ㅃ 하는 단단히 죄어진 소리며, 근육을 효과적으로 재빨리 사용하는 것에 대한 사람들의 과묵한 몰두가 그의 마음을 조금씩, 그러나 확실하게 사로잡아갔다.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에 도장에 가는 것은 그에게 있어 적지 않은 즐거움의 하나가 되었다.
"제가 권투를 마음에 들어 한 이유 중의 하나는, 그것이 깊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깊이가 저를 사로잡았다고 생각합니다. 그에 비하면 때리고 맞고 하는 건 정말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런 건 단지 결과에 지나지 않습니다. 사람은 이기기도 하고, 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깊이를 이해할 수 있다면, 사람은 설령 지더라도 상처를 입지는 않습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사람은 언젠가는 반드시 지게 마련입니다. 중요한 건 그 깊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권투란 건 ― 적어도 저한테는 그렇습니다만 ― 그런 행위였습니다. 글러브를 끼고 링 위에 서면 때때로 자신이 깊디깊은 구덩이 속에 있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굉장히 깊은 구덩입니다. 아무도 볼 수 없고,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을 만큼 깊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어둠을 상대로 싸웁니다. 고독합니다. 하지만 슬프진 않습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한 마디로 고독하다고 해도 거기엔 여러 가지 종류의 고독이 있습니다. 신경이 발기발기 찢기듯 쓰라리고 슬픈 고독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고독도 있습니다. 그런 것을 얻기 위해서는 자신의 몸을 깍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노력을 하면 그만큼은 돌아옵니다. 그것이 제가 권투에서 배운 것 중의 하나였습니다."
오자와씨는 그대로 20초쯤 말이 없었다.
"저는 사실 이 얘기를 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는 말했다. "될 수 있으면 이런 얘기는 까맣게 잊어버렸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물론 잊혀지진 않습니다. 잊고 싶은 일은 절대 잊혀지지 않죠." 오자와씨는 그렇게 말하며 웃었다. 자신의 손목시계를 보았다. 시간은 아직 충분했다. 그리고 그는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
오자와씨가 그때 때린 사람은 동급생이었다. 아오키라는 것이 그의 이름 이었다. 오자와씨는 처음부터 그가 싫었다. 왜 그렇게 싫었는지 스스로도 잘 이해가 안 갔지만, 한눈에 그가 너무 너무 싫어서 어쩔 수가 없었다. 누군가를 그 정도로 분명하게 싫어하게 된 것은 태어나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런 거 있잖습니까?" 그는 말했다. "누구든 어떤 사람이든 일생에 한 번쯤은 그런 경우가 있지 않나 싶어요. 무조건 누군가를 싫어하게 되는 거요. 저는 의미 없이 사람을 싫어하거나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스스로는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역시 그렇게 되는 상대방이 있습니다. 무슨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문제는, 대부분의 경우 상대방도 이쪽에 대해 똑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겁니다."
아오키는 공부를 아주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거의 일 이등을 다퉜죠. 제가 다닌 학교는 남자아이들뿐인 사립학교였는데, 그는 꽤 인기가 있는 학생이었습니다. 반에서도 눈에 띠였고, 교사들에게도 귀여움을 받았죠. 공부를 잘했지만 결코 잘난 척하지 않고, 탁 트인 성격에다 태연스레 농담도 잘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정의감에 불타는 듯한 구석도 좀 있었구요…. 하지만 저는 그 배후에서 희미하게 엿보이는, 요령 좋고 본능적으로 타산적인 점이 역겨워서 처음부터 참을 수가 없었던 겁니다. 구체적으로 그게 어떤 거냐고 물어도 대답할 순 없습니다. 구체적인 예를 들 수가 없으니까 요. 그저 저는 고밖에 말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몸에서 발산하는 에고와 프라이드의 냄새를 본능적으로 참을 수 없었던 겁니다. 누군가의 체취를 생리적으로 참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아오키는 머리가 좋은 아이였기 때문에 그런 냄새를 교묘하게 감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많은 반친구들이 그를 꽤 괜찮은 녀석인데, 쯤으로 생각했었죠. 저는 그런 소리를 들을 때마다 ― 물론 쓸데없는 얘긴 전혀 하지 않았지만 ― 어쩐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이 들었던 겁니다.
아오키와 저는 온갖 의미에서 대조적인 입장에 있었습니다. 저는 어느 쪽이냐 하면 말수가 적고, 반에서도 별로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원래부터 눈에 띄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 데다 혼자 있어도 별로 고통스럽지 않았습니다. 물론 친구 비슷한 상대들도 몇 명쯤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다지 깊은 사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조숙한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동급생과 사귀기보다는 혼자서 책을 읽거나 아버지가 가지고 계 신 클래식음악 레코드판을 듣거나 권투도장에 가서 손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쪽이 좋았습니다. 저는 보시다시피 몸집도 그렇게 눈에 띄는 쪽은 아닙니다. 성적은 그다지 나쁜 편은 아니었지만 특별히 잘하는 것도 아니었고, 교사들은 제 이름을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그런 타입이었죠. 그러니까 저도 별로 저 자신을 내세우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권투도장에 다니는 것도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고, 읽었던 책이나 들었던 음악 얘기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아오키라는 아이는 무얼 해도 진흙탕 속의 백조처럼 눈에 띄었습니다. 어쨌든 머리가 좋았습니다. 그건 저도 인정하죠. 머리 회전이 빨랐습니다.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그런 걸 손바닥 들여다보듯 척척 알아차리는 거죠. 그리고 그것을 보고 교묘하게 자신의 대응을 바꿉니다. 그러니까 다들 아오키에게 감탄하는 거죠. 쟨 참 머리도 좋은 대단한 녀석이야, 라구요. 하지만 저는 감탄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엔 아오키라는 인간은 천박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게 머리가 좋다는 거라면 저는 머리 같은 거 좋지 않아도 된다고까지 생각했습니다. 확실히 빠릿빠릿하죠. 하지만 그에게는 자기라는 것이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이것만큼은 꼭 호소하고 싶다는 것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자신이 모두에게 인정을 받고 있으면 그걸로 만족합니다. 그런 자신의 재치에 도취돼 있는 겁니다. 일정한 궤도에서 그저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뿐입니다. 하지만 아무도 그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걸 알아차린 건 아마도 저 하나였을 겁니다.
아오키도 필시 그런 저의 기분을 어렴풋이 알아챘을 겁니다. 눈치가 빠른 인간이니까요. 게다가 그는 저에게 왠지 모를 일종의 불쾌함을 느꼈었던 게 아닌가 합니다. 저는 바보가 아닙니다.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바보는 아닙니다. 자랑하는 건 아니지만, 저는 그 무렵부터 저 자신의 세계라는 것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희 반에서 저만큼 많은 책을 읽은 사람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저 역시 어렸었고, 스스로는 애써 감추려고 했지만, 아마도 자연히 그런 것을 자랑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얕보았던 부분이 있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런 무언의 자부심 같은 것이 아오키를 자극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느 날 저는 기말시험의 영어 테스트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제가 시험에서 일등을 하게 된 건 처음이었습니다. 우연히 그렇게 된 건 아닙니다. 그 때 뭐였는지 꼭 갖고 싶은 것이 있어서 ― 그게 뭐였는지 까맣게 잊어버렸습니다만 ― 만약 시험에서 한 과목이라도 1등을 하면 사주기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어 시험에서 꼭 1등을 해야지 하는 마음에 철저히 파고들었습니다. 시험 범위는 구석부터 구석까지 체크했습니다. 짬만 나면 동사의 활용을 외웠습니다. 교과서를 통째로 암기할 수 있을 정도로 되풀이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백점에 가까운 성적을 올려서 1등이 된 것쯤 저로서는 이상하지도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당연한 일이었죠.
하지만 다들 깜짝 놀랐습니다. 선생도 놀란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아오키도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던 모양입니다. 왜냐면, 아오키는 영어 시험에서 줄곧 일등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선생은 답안지를 나눠주면서 그런 얘기를 농담처럼 해서 아오키를 놀렸습니다. 아오키는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틀림없이 자신이 웃음거리가 된 듯한 기분이었겠죠. 선생이 무슨 말을 했었는지 다 잊어버렸지만,그 며칠쯤 뒤에 아오키가 저에 대해 뭔가 별로 좋지 않은 말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가 알려 주었습니다. 제가 시험에서 컨닝을 했다는 거죠. 그것 말고는 제가 일등을 할 리가 없다는 겁니다. 그 얘기를 반친구 몇 명인가로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그걸 듣고 굉장히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사실 그런 건 웃어넘기며 묵살했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아직 중학생이었죠. 그렇게까지 냉정할 순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점심시간에 아오키를 인적 없는 곳으로 데리고 가, 그런 소릴 들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냐고 따졌습니다. 아오키는 시치미를 뚝 뗐습니다. 야, 이상한 트집 잡지마, 하고 그가 말했습니다. 너한테 이러쿵저러쿵 얘길 들을 만한 거 없어, 어쩌다가 일등 한번 한 거 가지고 우쭐하지 말라구, 그런 말을 내뱉었습니다. 그리고 저를 가볍게 부딪치듯이 밀치며 빠져나가려고 했습니다. 틀림없이 저보다 자기가 키도 크고 체격도 좋고, 힘도 세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제가 반사적으로 아오키를 친 것은 그때였습니다. 정신이 들었을 때, 저는 아오키의 왼쪽 뺨에 힘껏 스트레이트를 처넣고 있었습니 다. 아오키는 옆으로 쓰러지면서 그 바람에 벽에 머리를 부딪쳤습니다. 쾅 하고 큰 소리가 났을 정도였습니다. 코피가 터져 흰 셔츠 앞에 흠뻑 젖어 들었습니다. 그는 그 자리에 주저앉은 채 멍한 눈으로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아마 너무 놀라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이해가 잘 가지 않았나 봅니다.
하지만 제 주먹이 그의 광대뼈에 닿는 순간부터 저는 상대방을 친 일을 후회했습니다. 이런 짓을 해봤자 아무 도움도 안된다는 걸 순간 깨달았습니다. 저는 여전히 분노로 몸이 떨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바보같은 짓을 했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아오키에게 사과할까 했습니다. 하지만 사과할 수 없었습니다. 상대방이 아오키만 아니었어도 저는 그 자리에서 깎듯이 사과했을 겁니다. 하지만 아오키라는 녀석에게만은 도저히 사과할 기분이 들지 않았습니다. 저는 아오키를 때린 것을 후회했습니다만, 아오키에 대해 나쁜 짓을 했단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었습니다. 그런 놈은 맞아도 싸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녀석은 해충 같은 인간인 겁니다. 사실 그런 놈은 누군가에게 짓밟혀도 쌉니다. 하지만 내가 그를 때려야만 했던 건 아니었다, 그것은 직관적인 진리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너무 늦었습니다. 벌써 상대방을 때린 겁니다. 저는 아오키를 그곳에 남겨 둔 채 자리를 떴습니다.
오후 수업에 아오키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아마 그대로 집에 갔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찜찜한 기분이 줄곧 제 머릿속에서 언제까지고 떠나지 않았습니다. 무얼 하든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음악을 들어도 책을 읽어도, 조금도 즐겁지 않았습니다. 위장 바닥에 뭔가 먹먹한 것이 고여 있어 전연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치 고약한 냄새가 나는 벌레를 삼킨 듯한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침대에 누워 자신의 주먹을 가만히 들여다보았습니 다. 그리고 난 얼마나 외로운 인간인가 하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저에게 그런 기분을 들게 한 아오키라는 녀석을 전보다 훨씬 더 격렬하게 미워했습니다."
"아오키는 이튿날부터 저를 줄곧 무시하려고 애썼습니다. 저 같은 건 아예 존재도 하지 않는 것처럼 굴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시험에서 1등을 했습니다. 저는 두 번 다시 시험공부에 힘을 쏟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런 건 저에게 이미 아무래도 상관없을 것처럼 여겨졌던 겁니다. 그래서 공부는 뒤쳐지지 않을 정도로만 대충 하고, 남은 시간은 제가 좋아하는 일을 하며 지냈습니다. 그리고 숙부의 도장에는 계속 다녔습니다. 아주 열심히 트레이닝을 했습니다. 덕분에 저의 권투 기술은 중학생치곤 상당한 것이 되었습니다. 자기 몸이 점점 변해 가는 것을 느꼈습니다. 어깨가 벌어지고, 가슴이 두꺼워졌습니다. 팔뚝이 탄탄해지고 뺨 근육이 바짝 당겨졌습니다. 이런 식으로 나는 어른이 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건 참 멋진 기분이었습니다. 저는 매일 밤 옷을 홀랑 벗고 화장실의 큰 거울 앞에 섰습니 다. 그 무렵에는 그런 자신의 몸을 바라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웠습니다.
그 학년이 끝나자 아오키와는 다른 반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마음이 푹 놓였습니다. 매일 교실 안에서 그와 얼굴을 마주치지 않고 지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기뻤습니다. 아오키 역시 마찬가지일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그 싫은 기억도 멀리 사라질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일이란 그렇게 간단한 게 아닙니다. 아오키는 줄곧 저에게 복수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었던 겁니다.자존심이 강한 인간이 더러 그렇듯이, 아오키는 복수심이 강한 녀석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한번 받은 모욕을 쉽게 잊어버릴 인간은 아니었던 겁니다. 그는 제 발목을 잡아챌 수 있는 결정적인 기회를 쭉 기다리고 있던 겁니다.
저와 아오키는 같은 고등학교로 올라갔습니다. 우리 학교는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함께 있는 사립학교였습니다. 매년 반이 바뀌었지만 아오키는 계속 다른 반이었습니다. 하지만 결국 마지막에, 고등학교 3학년 때 다시 한 번 그와 같은 반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와 그 교실에서 얼굴을 마주쳤을 때, 굉장히 싫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때 그의 눈빛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와 눈을 마주친 후, 위 속에서 예전에 느꼈던 것과 똑같은 묵직함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불길한 예감이란 거죠."
오자와씨는 거기에서 입을 다물고 눈앞에 놓인 커피 컵을 한동안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윽고 얼굴을 들어 희미하게 미소를 띄우면서 내 얼굴을 보았다. 창밖에서 제트기의 폭음이 들려왔다. 보잉737이 쐐기처럼 구름 속을 일직선으로 파고들어, 그대로 보이지 않게 되었다.
오자와씨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1학기는 아무 일 없이 평온 무사하게 지나갔습니다. 아오키도 평소와 같았습니다. 그는 중학교 2학년 때로부터 거의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류의 인간은 성장도 후퇴도 하지 않습니다. 똑같은 일을 똑같이 할뿐입니다. 아오키의 성적은 변함없이 톱 클래스였고 인기도 있었습니다. 그는 세상을 살아나가는 비결 같은 걸 10대에 이미 능숙하게 쥐고 있었습니다. 아마 지금도 마찬가지로 살아가고 있겠죠. 어쨌든 우리는 가능한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교실 안에 그런 싫은 상대가 있다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뭐 어쩔 수 없습니다. 저에게도 그 일단의 책임은 있으니까요.
얼마 후 여름방학이 되었습니다. 고교생으로서의 마지막 여름방학이었습니다. 저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을 정도의 성적을 거두고 있었고, 특별히 가리지만 않는다면 어딘가 적당한 대학에는 들어가겠지 했으므로 수험공부라 할 만한 공부는 하지 않았습니다. 매일 학교의 예습과 복습을 대충 하는 정도였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부모님도 잔소리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도장에 가서 트레이닝을 했고, 남은 시간은 좋아하는 책을 읽거나 레코드를 듣거나 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친구들은 눈빛이 상당히 달라져 있었죠. 우리 학교는 중학 고교 일관교육의, 이른바 수험교였습니다. 어느 대학에 몇 명이 들어가느냐, 어느 대학 입학한 수가 몇 위였냐, 그런 것들에 선생들도 눈빛을 바꿔가며 일희일비하는 학교였습니 다. 학생들도 3학년쯤 되면 완전히 열이 올라서 교실 공기도 무척 긴장 상태가 됩니다. 저는 그 학교의 그런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들어갔을 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는 데다, 6년 동안 끝까지 좋아지지 않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마음을 열 수 있는 친구를 결국 끝까지 한 사람도 사귀지 못했습니다. 제가 고교시절에 제대로 어울린 상대라고는 도장에서 만난 사람들 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은 저보다 나이가 많았고 이미 직장인인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지만 그 사람들과는 아주 즐겁게 어울릴 수 있었습니다. 연습이 끝나면 다같이 어딘가에서 맥주를 마시며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 다. 그들은 저희반 아이들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이었고, 하는 얘기도 보통 제가 반에서 하는 것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들과 함께 있는 편이 훨씬 편했습니다. 그리고 그들로부터 갖가지 중요한 것들을 배웠습니다. 만약 제가 권투를 하지 않았더라면, 숙부의 그 도장에 다니 지 않았더라면 자신이 얼마나 고독했을까 싶습니다. 그런 걸 상상하면 지금도 좀 오싹하죠.
여름방학 한 중간에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같은 반 아이 하나가 자살을 한 겁니다. 마쓰모토라는 이름의 아이였습니다. 마쓰모토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학생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눈에 띄지 않는다기 보단 아예 인상이란 게 없다는 쪽에 가까운 것 같은 아이였습니다. 죽었단 얘기를 들었을 때, 그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잘 생각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같은 반이었긴 했지만, 저랑 그는 아마 두어 번 이상은 말을 해 본 적이 없었을 겁니다. 호리호리하고 안색이 별로 좋지 않은 아이였다, 는 정도밖에 생각이 안 납니다. 그가 죽은 건 8월 15일 바로 며칠 전이었습니다. 종전기념일과 장례식이 한 날이었기 때문에 잘 기억하고 있죠. 굉장히 더운 날이었습니다. 집에 전화가 와서 그 아이가 죽었다는 얘기를 전하며 장례식에 다들 참석하기로 했으니까 오라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학급 전체가 장례식에 참례했습니다. 지하철에 뛰어들어 죽었답니다. 원인은 알 수 없었습니다. 유서 비슷한 걸 남겨놓긴 했지만 거기에는 단 한 마디, 더 이상 학교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만 써 있었습니다. 왜 학교에 가고 싶지 않은지, 등등의 자세한 이유는 아무 것도 써 있지 않았습니다. 대충 그런 얘기였습니다. 당연히 학교측은 난리가 났죠. 장례식 후에 학년 전원이 학교에 소집되었고, 교장이 앞에 나와 얘기했습니다. 마쓰모토군의 죽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는 둥, 그의 죽음의 무게는 우리들 전원이 확고히 지고 나가야만 한다는 둥, 이 슬픔을 넘어서 전원 한층 정진을 도모하자…는 둥, 그런 식의 진부한 얘기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저희 반만 교실에 모였습니다. 학생주임과 담임교사가 앞에 나와, 만약 마쓰모토의 자살에 뭔가 분명한 원인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딱 바로잡아야만 한다, 고 그들은 얘기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 이 반 가운데 뭔가 그의 자살 원인에 대해 짐작 가는 게 있다면 정직하게 말해주기 바란다고. 다들 쥐죽은 듯 조용할 뿐 한 마디라도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나는 그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죽은 급우가 딱하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죽음을 택할 건 아무 것도 없는 겁니다. 학교가 싫으면 학교 같은 데 안가면 그만이죠. 게다가 반년만 있으면 싫어도 학교를 나가야 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째서 굳이 죽어야만 한단 말입니까? 저는 잘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아마 무슨 노이로제였었겠거니 생각했습니다. 자나깨나 수험공부 얘기만 나오니, 머리가 이상해진 인간이 한 명쯤 나온다 해도 별로 이상한 일은 아닙니다.
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 신학기가 시작되자, 뭔가 기묘한 공기가 반에 떠돌고 있는 걸 느꼈습니다. 어딘지 모르게 다들 저한테 서먹서먹하게 대했습니다. 무슨 용건이 있어 주위 누군가에게 말을 걸어도 어쩐지 어색하고 머뭇대는 듯한 대답밖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처음에는 아마 그냥 기분 탓이겠지 했습니다. 어쩌면 다들 전체적으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어서 그러려니 하는 정도로 생각하고 별로 신경도 쓰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학기가 시작해서 5일쯤 지났을 무렵, 담임이 갑자기 저를 불렀습니다. 방과 후에 남아서 교무실로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담임 선생은 저에게 너 권투 도장에 다니는 것 같은데 그것이 사실이냐고 물었습니다. 사실입니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건 별로 교칙 같은데 위배되는 건 아닙니다. 언제부터 다 녔나, 하고 그는 물었습니다. 중학교 2학년때부터라고 대답했습니다. 니가 중학교 때 아오키를 때렸다는 건 사실이냐고 담임은 추궁했습니다. 사실이라고 저는 대답했습니다. 거짓말을 해서는 안되니까요. 그건 권투를 시작하기 전이냐, 시작한 후냐, 하고 담임은 물었습니다. 시작한 훕니다, 라고 저는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저는 아직 아무 것도 배운 게 없었습니다, 처음 석 달쯤은 글러브도 끼우지 못하게 했습니다, 라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담임은 그 말은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너는 마쓰모토를 때린 적이 있냐, 고 담임은 물었습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그렇잖습니까. 아까도 얘기했듯이 저는 마쓰모토라는 아이와는 거의 말을 한 적도 없습니 다. 때려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째서 제가 마쓰모토를 때려야만 합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마쓰모토가 학교에서 늘 누군가한테 맞고 있었던 것 같다, 하며 담임은 못마땅한 얼굴로 말했습니다. 얼굴이나 몸에 멍이 들어 집으로 돌아간 적이 자주 있었댄다. 어머니가 그러시더라. 학교에서, , 누군가한테 맞아서 용돈을 빼앗겼다는 거다. 하지만 마쓰모토는 그 이름을 그 이름을 어머니한테는 말하지 않았다. 그런 짓을 했다간 얻어터지고 괴롭힘을 당할 거라고 생각했던 거겠지. 그래서 그 녀석은 생각 끝에 자살한 거다. 불쌍하지, 아무한테도 털어놓을 수가 없었던 거야. 무척 심하게 맞았었다구. 우리는 누가 마쓰모토를 때렸는지 조사하고 있다. 만약 짚이는 데가 있으면 솔직히 말해라. 그럼 얘기는 원만하게 처리될 거다. 그렇지 않으면 경찰이 조사에 착수하게 된다. 너, 그건 알고 있겠지.
여기엔 아오키가 얽혀 있다는 게 팍 와 닿았습니다. 아오키는 마쓰모토라는 아이가 죽은 것을 정말 능란하게 이용하고 있었던 겁니다. 아마 그는 거짓말은 하나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제가 권투 도장에 다니고 있다는 걸 어딘가에서 알았던 겁니다. 아무에게도 얘기하지 않았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통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어쨌든 그는 그것을 알았던 겁니다. 그리고 마쓰모토가 죽기 전에 누군가에게 맞았다는 얘기를 들었던 겁니다. 그 다음은 간단하죠. 하나에 하나를 더하면 그만입니다. 담임한테가서 제가 도장에 다닌다는 것과 제가 예전에 자기를 때렸던 일을 담임한테 말하면 되는 겁니다. 물론 적당히 부풀리긴 했겠죠. 저에게 심한 협박을 당해 지금까지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던가, 피가 엄청나게 났었다던가, 그런 얘길 했을 겁니다. 하지만 나중에 금방 들킬 만한 아주 단순한 거짓말을 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는 용의주도한 아이였으니까요. 그는 단순한 사실 하나 하나에 교묘한 색깔을 입히고, 최종적으로 거기에 부정할 수 없는 공기 같은 것을 형성했을 겁니다. 그의 그런 수법이 눈에 선합니다.
담임은 저를 용의자로 찍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권투 도장에 다니는 인간은 많건 적건 불량하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게다가 저는 원래부터 담임 마음에 들만한 타입의 학생은 아니었습니다. 그 사흘 뒤 경찰에 불려갔습니다. 말할 것도 없이,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아무 증거도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그저 소문인 겁니다. 정말 서글프고 억울했습니다. 아무도 제 말 같은 건 믿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공정해야 할 선생조차 절 감싸주지 않았습니다. 경찰에서는 단순한 조사를 받았습니다. 저는 마쓰모토와는 거의 얘기를 한 적도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확실히 나는 4년전에 아오키라는 학생을 때렸다, 하지만 그건 흔히 있는 하찮은 싸움이었고, 그후 아무 문제도 일으키지 않았다고. 그뿐입니다. 자네가 마쓰모토군을 때렸다 는 소문이 있다고 담당 경관이 말했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하고 저는 말했습니다. 누군가가 악의로 그런 말도 안되는 소문을 낸 겁니다, 라구요. 경찰도 그 이상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증거도 없었던 겁니다. 그저 소문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경찰에 불려갔던 얘기는 곧 학교에 퍼졌습니다. 은밀히 처리됐어야 할 텐데 어딘가에서 새고 만 겁니다. 하여튼 그래서, 다들 저를 보는 눈이 결정적으로 달라져 버린 것 같았습니다. 경찰에 불려갔을 때는 불려갈 만한 근거가 있었을 것이다, 다들 그렇게 생각한 겁니다. 다들 저를 마쓰모토를 때린 사람으로 믿고 있는 듯했습니다.
아오키가 아이들에게 대체 얼마나 그럴 듯한 얘기를 한 건지, 반에 어떤 세론이 형성돼 있었는지, 그건 모르겠습니다. 저로서는 그런 건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건 틀림없이 지독한 얘기였을 겁니다. 어쨌든 반의 누구도 저와는 말을 하지 않게 됐습니다. 작당이라도 한 듯이 ― 아마 실제로 어딘가에서 작당을 한 것 같지만 ― 아무도 말을 걸어주지 않았습 니다. 뭔가 꼭 필요한 용건이 있어 말을 걸어도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때까지 친하게 지내던 녀석들도 제 곁에 다가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다들 저를, 마치 전염병 환자를 피하듯이 피하고 있었습니다. 저라는 인간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 그 자체를 완전히 무시하려고 했던 겁니다.
학생들뿐만이 아니었습니다. 교사들도 저와는 가능한 얼굴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들은 출석 체크를 할 때 제 이름을 부릅니다. 하지만 그걸로 끝입니다. 그들은 절대로 저를 지명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심한 건 체육 시간이었습니다. 무슨 경기를 해도 저는 사실상 어느 팀에도 끼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저와 짝을 이뤄주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선생은 한번도 저를 도와주려고도 하지 않았구요. 저는 묵묵히 학교에 가서, 묵묵히 수업을 받고, 그대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것이 매일 매일 계속됐습니다. 그건 정말이지 괴로운 나날이었습니다. 2주, 3주가 지나는 사이 저는 점점 식욕을 잃어갔습니다. 체중도 줄었습니다. 밤에도 잠을 잘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자리에 누우면 가슴이 두근두근하면서 온갖 이미지가 줄줄이 떠 올라 도저히 잘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눈을 떠도 어째 늘 머리가 멍했습니다. 자신이 지금 일어나 있는 건지 꿈을 꾸고 있는 건지, 그것조차 점점 분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는 사이 저는 때때로 권투 연습을 쉬게 되었습니다. 부모님은 걱정이 되어,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제게 물으셨습니다. 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냥 피곤할 뿐이에요, 라고 했습니다. 설령 부모님에게 다 털어놓는다고 해서 그분들이 뭘 어떻게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결국 부모님은 제가 학교에서 어떤 입장에 처해 있는지 끝까지 모르셨습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일을 하고 계셔서 자식을 상대해 주고 있을 만한 여유는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에 틀어박혀 그냥 멍하니 천장을 보았습니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저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온갖 생각을 떠올릴 뿐이었습니다. 저는 갖가지 상상을 했습니다. 가장 많이 상상했던 건 아오키를 때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오끼가 혼자 있는 틈을 타서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때립니다. 너 같은 놈은 인간 쓰레기라고 하면서, 마음껏 두들겨 팹니다. 상대가 비명을 질러도, 울면서 용서를 빌어도, 때리고 때리고, 얼굴이 엉망진창이 될 정도로 두들겨 팹니다. 하지만 때리고 있는 사이에 점점 기분이 나빠집니다. 처음에는 괜찮습니다. 그것 참 꼴 좋다고 생각합니다.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하지만 점점 역겨운 기분이 듭니다. 그런데도 저는 아오키를 때리는 광경을 상상하는 걸 그만 둘 수 없었습니다.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면 자연히 아오키의 얼굴이 거기에 떠오르고, 정신이 들면 저는 아오키를 패고 있는 겁니다. 그리고 한번 때리기 시작하면 그걸 멈출 수가 없습니다. 상상을 하고 있는 사이에 실제로 기분이 나빠져서 토한 적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정말 몰랐습니다.
모두의 앞에 나가, 양심에 꺼림칙한 일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고 변명할까도 했습니다. 내가 뭔가 벌을 받을 만한 일을 했다면 그 증거를 제시해 달라. 증거가 없다면 나를 이런 식으로 벌하는 건 그만 둬 달라. 하지만 어떤 말을 해도 믿어주지 않을 거라는 예감이 저에게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솔직히 저는 아오키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어버린 녀석들을 상대로 일일이 변명 따위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런 변명을 하면 제가 밀리고 있다는 걸 결과적으로 아오키에게 알리는 게 됩니다. 저는 아오키 같은 인간과 같은 씨름판에 서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대책이 없었습니다. 아오키를 때릴 수도 벌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해서 모두를 설득할 수도 없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묵묵 히 버티는 것뿐이었습니다. 반년 남았습니다. 반년만 더 있으면 학교도 끝날 테고, 그러면 더 이상 아무하고도 얼굴을 맞대지 않아도 되는 겁니다. 반년 동안 어떻게든 그 침묵으로 버티면 되는 겁니다. 하지만 제가 6개월을 견딜지 어떨지 자신이 없었습니다. 다음 한 달을 버틸 수 있을지조차 자신이 없었습니다. 저는 집에 돌아오면 매직으로 달력을 하루, 하루 새까맣게 칠해 나갔습니다. 간신히 오늘이 끝났다, 간신히 오늘이 끝났다는 식이었습니다. 저는 숨통이 막혀 죽을 것만 같았습니다. 그리고 만약 어느날 아침 제가 아오키와 같은 전차에 타지 않았더라면, 정말 숨통이 막혀 죽었을지 모릅니다.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니 알겠지만, 제 신경은 그 정도로 아슬아슬한 데까지 몰려 있었던 겁니다.
제가 그 지옥 같은 상황에서 어떻게든 다시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이 시작된지 한 달이 좀 넘었을 즈음이었습니다. 학교로 가는 전차 안에서 우연히 아오키와 딱 마주쳤던 겁니다. 전차는 변함없이 만원이어서 꼼짝달싹도 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제 바로 앞에 아오키의 얼굴이 보였습니다. 두세 사람 건너, 누군가의 어깨 너머로 아오키의 얼굴이 보였습니 다. 저와 그는 꼭 마주 보는 꼴로 얼굴을 맞닥뜨렸던 겁니다. 그도 저를 알아차렸습니다. 얼마 동안 우리들은 서로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틀림없이 그 무렵 저는 처참한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겁니다. 잠도 잘 자지 못한 데다 노이로제 기미도 있었으니까요. 처음에 아오키는 냉소적인 눈으로 저를 쳐다보았습니다. 맛이 어때, 하는 식으로 말이죠. 저는 그 일들이 전부 아오키가 꾸민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고, 아오키도 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들은 잠시 꼼짝 않고 서로를 노려봤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의 눈을 보고 있는 사이에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건 그때까지 느낀 적이 없던 감정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오키에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때로는 죽이고 싶을 만치 미워했습니다. 하지만 그때, 만원전차 안에서 제가 느낀 것은 분노라든가 증오라기 보다는, 오히려 슬픔이나 연민에 가까운 감정이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어쩐지 깊은 슬픔 같은 것이 느껴졌던 겁니다. 틀림없이 저 녀석은 진짜 기쁨이나 진짜 자부심 같은 것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몸 속 깊은 데서 솟아오르는 듯한 그 잔잔한 떨림을 그 녀석은 틀림없이 죽을 때까지 느낄 수 없을 거라구요. 어떤 종류의 인간에게는 깊이라는 것이 결정적으로 결여돼 있는 겁니다. 그렇다고 저한테 깊이가 있다는 건 아닙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 깊이라는 것의 존재를 이해할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겁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것조차도 없습니다. 그건 텅비고 밋밋한 인생입니다. 얼만큼 남의 눈을 끌건, 아무리 겉으로 의기양양하건 거기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의 얼굴을 잠자코 빤히 쳐다보았습니다. 더 이상 아오키를 패 주고 싶단 생각은 들지 않았습니다. 아오키 따위는 어찌 됐든 상관 없어져 버린 겁니다. 정말로, 저도 깜짝 놀랄 만큼 어찌 됐든 상관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후 다섯 달을 이 침묵으로 견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것을 잘 견뎌낼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저에게는 아직 자부심이라는 게 남아 있었습니다. 아오키 같은 인간에게 이대로 질질 끌려갈 수는 없다, 굳게 다짐했습니다.
저는 그런 눈으로 아오키를 바라보았습니다. 꽤 오랫동안 우리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었습니다. 아오키 역시 눈을 피했다간 지는 거라고 생각했겠죠. 전차가 다음 역에 닿을 때까지 우리들은 어느 쪽도 눈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끝에 가서는 아오키의 눈이 떨렸습니다. 아주 미세하게 떨렸지만 분명히 알 수 있었습니다. 오랫동안 권투를 하다보면 상대방 눈의 움직임에 민감해지게 됩니다. 그건 다리를 전혀 뗄 수 없게 된 복서의 눈입니다. 스스로는 움직이려 하지만 사실은 움직이지 않습니다. 자신은 움직이고 있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발은 딱 달라붙어 있습니다. 발이 달라붙으면 어깨가 유연하게 움직이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펀치에 맥이 빠져 버리게 되는 겁니다. 그런 눈이었습니다. 뭔가 이상하다, 하지만 그게 왜 그런 건지 본인도 모릅니다.
그날을 경계로 저는 다시 일어섰습니다. 밤에는 푹 자고, 밥도 잘 먹었고, 권투 연습도 다니게 되었습니다. 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아오키한테 이긴다던가, 뭐 그런 건 아니었습니다. 인생 그 자체에 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제 자신이 경멸하고 모멸하는 것에 그렇게 쉽게 찌부러질 순 없는 겁니다. 저는 그대로 다섯 달을 참았습니다. 아무하고도 단 한 마디도 하지 않았죠. 난 틀리지 않았어, 모두가 틀린 거야, 자신에게 계속 다짐했습니다. 매일 가슴을 쫙 펴고 학교에 가서, 가슴을 쫙 펴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나오자 큐슈에 있는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거기까지 가면 고교시절에 아는 사람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을 수 있을 거란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오자와씨는 거기까지 말하자 크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커피 한 잔 더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다. 나는 사양했다. 이미 아까부터 커피를 석 잔이나 마시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 강렬한 경험을 하면 인간이란 좋든 싫든 변하고 맙니다." 하고 그는 말했다. "좋은 쪽으로도 변하고, 나쁜 쪽으로도 변합니다. 좋은 쪽으로 말하자면, 저는 그 일을 계기로 상당히 인내심 많은 사람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반년 동안 맛본 것에 비하면 그후로 경험한 역경 같은 건 역경 축에도 들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에 비하면, 하고 생각하면 대부분의 힘든 일, 쓰라린 일도 참고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받고 있는 상처나 고통 같은 것에 대해서도 보통사람 이상으로 민감해졌습니다. 이건 플러스 점이죠. 그런 플러스 특질을 얻음으로써 저는 그후 몇 명인가 진짜 좋은 친구를 사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는 마이너스도 있습니다. 저는 그때부터 인간이라는 것을 아예 전혀 신용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인간불신이랄지, 그런 건 아닙니다. 저한테는 아내도 있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이루고 서로를 지켜줍니다. 그런 건 신뢰 없이는 안되는 겁니다. 하지만 말이죠, 저는 이런 생각이 듭니다. 설령 지금 이렇게 평온 무사하게 지내고 있다 하더라도, 만약 무슨 일이 일어난다면, 만약 뭔가 끔찍이 악의에 찬 것이 다가와 이런 걸 뿌리째 뒤엎어버린다면, 설령 자신이 행복한 가정이며 좋은 친구들에 둘러 싸여 있어봤자 한 치 앞이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다구요. 어느날 갑자기 제가 하는 말을, 또는 당신이 하는 말을, 누구 한 사람 믿어주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일은 갑자기 일어납니다. 어느날 갑자기 닥치는 겁니다. 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요전에는 그것이 여섯 달로 어떻게든 끝이 났습니다. 하지만 다음 번에 다시 한번 같은 일이 일어났을 때 그게 얼만큼 오래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이 다음엔 제가 얼마만큼 그것을 견딜 수 있을지, 전혀 자신이 없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면 때때로 정말 무서워집니다. 한밤중에 그런 꿈을 꾸고 벌떡 일어나기도 합니다. 늘 그렇습니다. 그럴 때 저는 아내를 깨웁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매달려 울음을 터뜨립니다. 한 시간쯤 우는 적도 있습니다. 무서워서, 무서워서 죽을 것만 같습니다." 그는 이야기를 멈추고 창밖의 구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구름은 아까부터 꼼짝도 안하고 있었다. 관제탑도 비행기도 수송차량도 트랩도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도 그런 두터운 구름 그림자에 온갖 색깔을 빨려버리고 있었다.
"제가 무서워하는 것은 아오키같은 인간이 아닙니다. 아오키같은 인간은 어디에나 있는 데다, 그런 거에 대해선 이미 포기했습니다. 그런 인간을 보면 무슨 일이 있어도 관련을 맺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좌우지간 도망치는 겁니다. 도망치는 게 상책이다, 그런 얘기죠. 그런 건 어려운 게 아닙니 다. 그런 인간은 금방 구분할 수 있습니다. 또 동시에 저는 아오키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대단하단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기회가 올 때까지 가만히 엎드려 기다리는 능력, 기회를 확실하게 포착하는 능력, 사람의 마음을 실로 교묘하게 쥐고 흔드는 능력 ― 그런 건 아무에게나 있는 건 아니죠. 그런 건 구역질이 날 정도로 싫어하지만, 그래도 그게 일종의 능력이란 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제가 정말 무섭게 생각하는 건, 아오키같은 인간이 떠들어대는 말을 비판 없이 받아들여서 그대로 믿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만들어낼 줄 모르고, 아무 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주제에, 입에 맞고, 받아들이기 쉬운 다른 사람의 의견에 놀아나 집단적으로 행동하는 패거리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뭔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다고는 요만큼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이 누군가를 무의미하게, 결정적으로 상처 입히고 있을지 모른다고는 짐작도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런 자신들의 행동이 어떤 결과를 낳든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습니다. 정말 무서운 건 그런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제가 한밤중에 꿈을 꾸는 것도 그런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꿈속에서는 침묵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꿈속에 나오는 사람들은 얼굴이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침묵이 차디찬 물처럼 모든 것에 점점 스며듭니다. 그리고 침묵 속에서 모든 것이 흐물흐물 녹아버립니다. 그런 가운데 제가 녹아들면서 아무리 소리를 질러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겁니다."
오자와씨는 그렇게 말하며 머리를 저었다.
나는 그대로 다음 말을 기다렸으나 이야기는 거기에서 끝났다. 오자와씨는 테이블 위에 양손을 깍지끼고 그저 가만히 잠자코 앉아 있었다.
"아직 시간은 이르지만 맥주라도 마실까요?" 조금 후 그가 말했다. 마시죠, 하고 나는 말했다. 확실히 맥주가 마시고 싶은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