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2008. 11. 3. 01:26daily

2008, 목동



금요일, 토요일은 학교 축제 기간이었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축제라는 것이 전혀 없는 이상한 학교라서 고등학교 축제경험은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에서 교사로서 경험하는게 처음이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축제에 대한 환상같은건 없다. 대학교에서의 축제도 별 대단한것 없이 결국 술파티로 끝나버리는 우리나라 현실에서 고등학교 축제라고 별거 있겠냐는 생각이고 내가 경험한 지난 두번의 축제도 역시 내 예상대로 별거 없었고 올해 세번째로 경험하는 축제도 사실 내 예상과는 별반 다를바 없었다. 근데 묘하게도 3번의 축제에서 내가 느낀 감정이 묘하게 비슷했다.


축제 전날에는 2학기 학부모 진로상담이 있는 날이라 오전수업만 하고 오후에는 상담과 함께 축제준비에 들어갔다. 난 농구부를 맡고 있는데 3:3 농구대회를 주최하지만 울학교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별로 없고 타학교에서 농구 좀 한다는 놈들이 농구대회 상금을 노리고 오는 터라 준비할거라곤 체육관밖에 없으니 신경쓸게 전혀 없었다

다른 부서들 준비하는 애들 정신없이 뛰어다니면서 준비하는걸 보니 가슴 한 구석이 왠지 알싸하다. 난 개인적으로 우리학교 애들은 좀 재미없다고 생각한다. 워낙 공부가 강조되는 동네에서 좀 곱게 자란 아이들이라 개성도 좀 없고 학교분위기도 공부 이외에 다른 활동을 활발하게 하는걸 강조하지 않다보니 아이들 눈빛이 반짝거리는 걸 보기는 쉽지 않다.

축제를 앞두고 아이들의 눈빛은 잠깐 빛난다. 특히 똘똘한 아이들이 모여있어서 일을 체계적으로 추진하는 부서는 더 활기차다. 똘똘하지는 않으나 의욕이 넘치는 아이들이 있는 부서의 아이들은 다툼이 많다. 뭘 해야할지는 모르겠으나 아무튼 뭔가를 하고 싶어하는 아이들이니.

가슴 한구석이 알싸한 이유는 나도 그렇게 눈빛을 반짝거리면서 뭔가를 해보고 싶기 때문이다. 내 심심한 고등학교 생활에서 얻지 못한걸 얻고 싶은 마음? 혹은 열정적으로 땀흘려본 경험이 요즘 너무 없어서 그런걸 느끼고 싶은 심정. 혹은 내 부서 혹은 내 팀같은 나의 조직에 대한 애착과 노력과 성취감을 얻고 싶은 마음일거다.

그래서 아이들을 볼때 드는 마음은 기특함과 부러움, 애틋함이 섞여있다.


축제 당일은 정신이 없고 무척 피곤하다. 작년부터 축제현장 스케치 사진은 내 담당이 되어버렸기에 아침부터 축제 끝나는 오후까지 계속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는다. 작년에는 체육대회와 연이은 축제활동 사진으로 2000장 가까이 찍었다. 올해는 찍지말아야지 다짐했었는데 어찌어찌하여 또 사진을 찍었다.

사진을 찍으며 여기저기 돌아다녀보면 역시 이런 큰 행사를 치르는 준비과정에서 느껴지는 뭔가 이루는 듯한 뿌듯함과 그리고 그 행사가 저물어가는 시점에서 느껴지는 허전함을 동시에 느낀다. 또한 엉성한 조직에서 더 많이 하고 싶어하는 사람과 하기 싫어하는 사람들의 다툼 그리고 그걸 조율하지 못하는 리더들때문에 파탄나는 조직을 보게 된다. 축제 전날에는 열정이 마냥 부럽기만 했는데 축제 당일에는 이제 그런 열정이 제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그라드는걸 보니 부럽기보다는 결국 다 이렇게 뭐 라는 시큰둥한 심정이 되어버린다. 아 늙은것인가~


그래도 축제를 꿈꾼다. 내 아이들이랑 같이 몇일 몇날을 고민고민하고 고생고생하며 만든 작품들을 사람들에게 선보이고 정말 즐겁게 행사를 즐기며, 땀방울을 흘리고 난 후의 허전함을 같이 느끼는 그런 축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