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동안

2005. 1. 25. 11:29daily

지난주 월요일부터 화,수,목,금,토. 그리고 이번주 월요일까지 7일동안 회사에서 한 일이라고는 밀린 서핑하기. 그리고 밀린 서핑들을 다 처리하고 나서는 우연히 만나는 좋은 사이트들 처음부터 끝까지 독파하기였다. 회사에서 하루종일 그렇게 서핑만 하면 눈치가 보이지 않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년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회사 분위기가 남이 뭘 하건 신경쓰지 않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아무도 뭐라고 하지 않는다. 덕분에 나는 이런저런 잡스러운 것들을 읽고 듣고 보면서 오랫만에 이런저런 잡생각에 빠졌다.

2005년들어와서 아직 제대로 사진을 찍으러 간 적이 없다. 훈련소 다녀와서 카메라 멀쩡한지 시험해보려고 서랍에서 꺼내어 테스트삼아 몇장 찍어보고, 친구랑 맥주 마시면서 30컷정도 찍어본게 전부랄까. 작년 연말에 친구들 만나면서 찍어놓은 필름 5개는 아직도 책상위에 놓여있고 그건 여행간 친구가 돌아오면 같이 뭉텅이로 필름스캔 맡길거니까 아직 눈으로 보려면 멀었다. 사진을 찍지 않음에도 이놈의 욕망이라는 것은 끊임없이 움직이다보니 괜히 동호회 게시판에 가서 이런저런 리뷰를 읽으면서 괜한 소유욕에 사로잡히기도 했다. 언제나 게시판에는 욕망들이 소용돌이친다. 치기어린 겉멋에 사로잡힌 것에서부터 진정 부르르 끓어오르는 욕망까지 참 다양한 모습들을 볼 수 있다.

최근에는 몇몇 글을 잘 쓰시는 분들의 리뷰가 있어서 즐겁게 봤다. 현직 카피라이터라는 분의 글이었는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메라와 렌즈들에 대한 리뷰글에서 얼마나 사진을 좋아하고, 또 그 좋아하는 사진을 찍게 해주는 카메라들을 좋아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소소히, 침착하면서도 소곤소곤한 목소리로 이야기한다. 마음속의 열정이 듬뿍 담겨 있으며 그 열정을 조금씩조금씩 생활속에 조화시킨다고나 할까. 내게 있어서 가장 부족한 것을 가졌다는 생각이 들어 부러웠다. 그리고 참 많이 배웠다. 사진을 찍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즐거움이 아닐까. 내 즐거움을 위해서 취미로 하는게 사진일터인데. 내 마음속의 영상들을 다른 매체위에 옮기는 작업중의 하나일텐데 어찌보면 나는 내 마음속의 영상을 들여다보기보다는 내 눈으로 보는 것들 사이에서 그럴싸한 모습만을 만들어내려고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언가 결심을 하는 사람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새해가 되었다고 올해는 뭐뭐 해야지 하고 계획을 열심히 세우고 다짐을 하고 몇일이 지나면 작심삼일이 되었다고 한탄하는 그 끝없는 반복이 싫다. 그 사람들의 그 마음이 싫은게 아니라 그런 계획속에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어떤 과정이 싫은거다. 나같은 경우에만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계획을 세우고 다짐을 하다보면 자꾸 본질적인 가장 중요한 목적보다는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며 방법들에 더 신경을 쓰게 되고, 그러다보면 주객이 바뀌어 결국은 목적은 사라져버리고 수단에의 고민만 남아버리게 된다. 수단에의 고민만 한참 하다 작심삼일이 되어 끝나고나면 그 고민은 그냥 사라져버리는 물거품같은 것이겠지.

위와 같은 얼토당토않은 이유로 나는 다짐이나 계획같은 것을 잘 세우지 않는다. 사실 두려운건 다짐이나 계획에서 오는 저런 부작용들이 아니라 그 부작용들을 뻔히 알고 있음에도 잘 고치려 들지 않는 내 자신일거다. 다짐하고 계획해봐야 결국에는 홀라당 까먹고 쓸데없는 것에 대한 고민만 하다 혼자 자포자기할 내 모습을 뻔히 알기에. 어짜피 그리 될거 뭐하러 다짐하냐 싶은 생각에 다짐조차 하지 않아버린다. 잘못된 것이 있으면 고치면 될것을 참으로 대책없고 무책임한 성격이 아닐 수 없다.

사진을 찍을 생각을 하지 않고, 마음의 풍경들에 눈을 돌려볼 생각을 하지는 않고, 으례히 습관처럼 괜한 도구들에만 눈을 돌리고, 그 도구들이 있으면 어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는 바보같은 모습은 이제 그만~~ㅎㅎㅎ 작년 여름 이후로 아직까지 아무런 사진장비도 안 사고 잘 지내왔다. 이정도면 잘한거 아냐? 본질을 보자구.본질을. 이 양반아~



오늘 오전도 이렇게 가고 있다. 토요일에 개발이사가 간만에 회사에 출근해서 내게 일거리를 주고 갔다. 프로그램에 들어갈 추가기능에 대한 기획서를 작성하는 것인데 내 머리속에는 '대충 어찌어찌하면 어찌어찌되겠구만' 이라는 그림이 보이는데 이걸 글로 옮기는 매우 귀찮으며 하기 싫은 작업이다. 월요일까지 작성한다고 했으나 개발이사는 주중에 출근하지 않는 관계로 어제까지 그냥 보냈다. 오늘 저녁까지는 작성한다고 했으니 오후에는 슬슬 시작해봐야지.

일할때는 음악을 잘 듣지 않는 편인데 오늘은 2분 48초짜리 노래를 한시간째 반복해서 듣고 있다. 좋구만
Guitar Fingerstyle 중 Muriel Anderson / It Never Gets Easier